[문지웅 목사]십계명, 교회의 세상을 향한 선교적 투신 (신 5:1-21)
1. 오늘을 위한 십계명
신명기는 ‘오늘’이란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순종과 결단은 오늘 즉각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이 온다면 오늘처럼 또 순종하고 실천하면 된다는 말이다. 신명기에는 회고조의 과거 지향은 없다(2-3절).
신명기는 출애굽 2세대와 '지금 여기서' 맺은 언약이다. 기성 세대와 현 세대가 한 덩어리로 묶여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숙고하고 실행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니 십계명은 참된 그리스도인 혹은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켜야 할 하나님의 요청이며 세상을 향한 신적 도전이다.
십계명은 세상을 향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십계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부여받은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숙으로 이끄신다.
그리스도는 십계명을 삶과 인격 및 자신의 사역 안에서 완성하셨다. 십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백성이다. 십계명은 구약 계명의 핵심이라서 십계명을 제대로 알고 실천해 보면 성경 전체를 알게 된다.
2. 모든 기본 단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1계명은 종교적(제의적) 계명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존속 여부를 결정짓는 헌법 1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돈(맘몬)을 예배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자리는 없다. 돈을 거룩하게 낭비할 때 하나님 예배가 시작된다.
자기욕망의 노예가 된 시대, 광고와 성취욕 및 유행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불편하다. 2계명은 인간의 조작적 상상력에 의해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이 축소, 제한되는 것을 금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목소리 없는 신으로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3계명은 하나님을 들먹이고 거론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지 말라고 한다. 죄악을 품고 드리는 기도는 비뚤어진 목적으로 야웨의 이름을 헛되이(망령되이) 들어 올리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 사랑의 첫 세 계명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자,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넘어가는 교량이다.
안식일은 다시 노예화 된 삶을 막아주며(저항하며), 파괴적 탐욕과 성취 과욕(workaholic, 일중독)이 우상숭배일 수 있음을 경계한다. 안식일은 일(노동)의 금지가 아니라 일에 궁극적 신뢰, 일을 통한 구원에 제한을 가하며 하나님 은혜의 절대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날이다.
5계명은 부모의 출산과 키워주심에 대한 보은(報恩)과 부모세대의 수고를 통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 준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6계명은 단순 살인뿐 아니라 증오와 분노 혹은 고의적으로 살해할 심리적 기획까지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범죄다. 7계명은 부부 사이에 이뤄지는 성관계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며 가정의 고결함(신성함)도 지켜져야 한다. 부부 사이의 인격적 친밀성을 점검하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8계명은 인신납치(사람 훔치기)를 금지한다(삿 21장). 노동력 징발이나 배우자를 찾기 위해 인신납치가 광범위하게 자행된 당시 사회에서 이 계명은 매우 적실했을 것이다. 임금을 주지 않고 일 시키는 것도 인신납치 수준의 죄가 된다.
9계명은 법정(재판)에서 거짓 증언으로 부당하게 대우받는 인권 유린을 보호한다. 조작된 증언으로 공평과 정의가 파괴되고 언론과 SNS를 통해 명예훼손, 과장된 왜곡보도 등도 거짓 증언의 악행이다.
10계명은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을 경계한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집착적 욕구는 자아 욕심 숭배다(나봇의 포도원 사건, 아간의 전리품 착복, 다윗의 밧세바 이야기 등).
3. 나사렛 예수 버전의 십계명
예수는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통치) 복음을 십계명으로 삶과 인격 및 관계와 사역 속에서 녹여냈고 완성하셨다. 예수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십계명을 준수하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로 살아 갈 수 있도록(성화) '새롭고 산 길'을 여셨다. 따라서 십계명은 교회(하나님의 참된 공동체)가 이 땅에서 구현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정치 활동이자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는 십계명을 자신의 맥락 안에서 더 철저화 했고 '과격한 내면화'로 해석하여 실행했다.
산상수훈은 예수판 십계명이다(마 5:21-48). 교회의 세상을 향한 선교적 참여과 헌신은 십계명의 원칙에 근거를 둔 행동이다. 십계명의 선교적 유익은 개인(가족)이나 특히 국가(사회)를 세워 나가는 과정에서 피상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선교를 막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