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 세계의 탄식과 열망(18-25)
고난은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지만 '냉철한 희망'(rentless hope)을 갖고 기독교 현실주의자로 살면 된다. 바울은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현재의 고난 사이로 '장차의 영광'이 마치 엘리야가 본 조각 구름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웅장한 통치'는 계속된다.
창조 세계는 산고(産苦)로 신음하고 있다.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영화를 미리 받은 하나님의 백성도 탄식한다. 우리는 오게 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며 인내로 열렬하게 기대한다.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들(교회)이 회복과 구원의 일(실재)을 풀어가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강한 목마름으로 학수고대하고 있다. 피조 세계는 썩어짐(상실)의 종노릇에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해 달라고 강청한다.
'비극적 매몰'의 원죄성은 '악의 평범성'을 생산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 공감의 무능성이 도처에 퍼져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고 있는 나라를 희망하며 인내와 불굴로 산다. 이는 새로운 인간성을 받은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이다.
2. 교회와 성령의 기도(26-27)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론 무엇을 간구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있다. 기도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본성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민족들과 모든 창조세계의 자유와 해방,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한다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심히 힘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령 자신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절박함) 우리를 위해 친히(주도적으로) 간구하신다.
우리는 기도할 때 성령의 절박한 기도를 느끼게 된다. 기도의 시간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돕고 계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파멸과 참상에 직면한 피조 세계의 허무감(20절)을 구속(해방)해 달라고 구하지만,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성령 자신이 우리(개인과 교회) 안에서 기도의 숨과 말로 중보 기도를 하신다.
교회가 새 시대를 잉태하기 위해 고뇌와 산통을 겪으며 기도할 때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사랑, 능력이 개인과 교회의 기도 과정에 나타난다. 교회만이 세상의 고통과 탄식에 대하여 기도할 수 있다.
3. 시작된 영화와 하나님의 모략(28-30)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변경할 수 없는 (하나님의)사랑의 위대한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하다. 이런 궁극적 승리를 맛볼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거나 참된 율법을 지키는 자들 아니면 참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의 백성들(교회)이라는 인류의 ‘대리자’를 통해 성취된다. 우리는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부르심 받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더 많이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뜻)과 계획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의 모양(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갱신된 인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 전위와 첨병으로서 '그리스도의 동료 상속자' 또는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를 먼저 부르셨다(롬 8:17).
이것은 '지금부터 여기서' 일어나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갱신된 백성들은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반영하는 지점까지 이르게 된다. 시작된 영화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동료와 공동 상속자답게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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