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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웅 목사]절망 너머로 열린 길(시 77:1-20)

by 청신아 2024. 2. 5.

[격통의 밤] 
누구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다그쳐진 탄식으로 애절한 간구를 했던 시간들이 있다. 지금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상실감으로 불면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오열하고 밤이 새도록 흐느껴도 괴로움이 사라질 줄 모른다. 얍복강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했던 야곱의 혈투 같고, 땀이 피방울이 될 정도의 목숨을 건 겟세마네 예수의 기도와 겹친다. 

[유기 불안] 
‘밤에 부르던 노래’는 지나간 세월이 준 비참으로 채워진, 구슬픈 눈물의 노래다. 버림받은 자의 심각한 침울의 운조(韻調)이자 버림 당해 밟혀 본 자(민족)가 기억하기 싫지만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몸에 새겨진 곡조(曲調)다. 부모는 나를 버릴 수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 수 있다니, 언약적 신실함의 관계가 끝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의 죄 때문에 ‘헤세드의 추격’을 멈추셨단 말인가?

[회상의 힘] 
기억할 수 있는 여력은 평소에 묵상하는 삶에서 온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즐거움을 맛보아 체득한 자는 기나긴 곤경과 풀리지 않는 현실의 악과 고난 앞에서 여전히 살아 맴도는 헤세드의 만질만한 틈, 에메트의 생생한 기록을 소환한다. 비록 작은 소리로 되뇌이고 낮은 소리로 읊조린다해도(12절), 하나님의 세상 운행의 방식(道)은 드러난다. 정제된 과거는 기억으로 지금 여기서 새롭게 살아난다. 

[바다 속에 난 길] 
하나님은 ‘모두를 위해 한 번에’(once for all, 영단번에) 눌린 자, 배제를 겪어 본 자, 혐오의 참혹함을 아는 자를 위한 자유의 노래를 주셨다. ‘이제 그만’하라는 새로운 명령이 내리고 해방을 위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천사도 모를 정도로 신적 모략은 최고의 두려운 철벽을 마주할 때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신적 모략의 시간이다. 

[성찬, 먼저 온 미래] 
몸에 대한 잔인한 강탈에 저항하려는 구원(출애굽)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자유와 해방의 발판을 만든 ‘그리스도의 몸’ 개념 숙지는 매우 중요하다. 부활을 미리 받은 몸은 ‘서로의 소속감’으로 나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복음의 사회를 펼치려 한다. 성찬은 부활한 삶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식탁이다. 새로운 기대의 식사 자리는 새로운 경제적 상상을 불러온다. 빵이 찢어질 때 찢어진 모든 이들과 생명의 선물을 함께 나누려는 강렬한 기대를 낳고 우리를 그 시간 속으로 초대한다.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
탄식과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내고 있거나 보냈던 시간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과 다시 연결하여 우리가 ‘새로움으로 도약할 수 있는 터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숙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