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8 [문지웅 목사]자유와 사랑의 역동(변증법)(고전 10:23-11:1) 1. 사익(私益)이냐 공익(公益)이냐 '나는 모든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 말이긴 하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자유이거나 사람을 세우는 자유는 좋고 아름답다. 우리는 ‘사사화 된 소유적 자유’를 배격한다. 자유가 성경적 기준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면 자기딴엔 자유롭게 행동했지만 자기 중심적 욕망을 드러낸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자유의 슬픈 패착이다. 자유는 양심과 함께 걸을 때 힘차고 존귀하다.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을 담보해 주는 가장 빛나는 햇살이자 강(江)의 발원지와 같다. 고린도 교회에서 이슈가 된 자유 사용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에서 유통된 육류를 감사함으로 사다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둘째, 그러나 교회에 나온 .. 2023. 11. 8. [문지웅 목사]영적 침체와 새로운 사명의 부여(왕상 19:1-21) 1. 탈진. 불평. 포기. 엘리야는 상심과 낙심 속에 홀로 고립되어 로뎀 나무 아래에서 두려움의 압박을 받고 있다. 영적 침체의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탈진한 예언자는 자기중심적인 불평 속에서 상황의 어두운 면만 보는 것 같다(10절, 14절). 엘리야는 오바댜가 숨겨 준 100명의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도 잊고 있다. 갈멜산의 위대한 승리도 기억하지 않는다. 두 마음을 품었던 백성들이 극적 회심을 하여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졌건만..(18:39). 호렙산에서 엘리야의 열광적인 승리가 가져다 준 높은 긴장(스트레스)과 이세벨의 엘리야 처형 의지와 맞물리며, 엘리야는 광야로 피신하였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죽을 궁리에만 몰두한다(4절). 십자가 후에 영광 있지만 승리의 영광 후에 다시 깊은 죽음의 내리막길.. 2023. 10. 30. [문지웅 목사]죄는 연대책임(왕상 13:33-14:20) 오늘 본문은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죄악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의 이야기다. '말씀에서 떠난' 배교적 이탈은 예언자적 말씀의 예리한 통찰과 그 적합성을 거듭 확인해 준다. 보기에는 미련해 보여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과 말씀에 대한 신뢰만이 여전히 옳다! 1. 변장은 불필요 죄와 벌은 공동체적인 차원을 갖는다. 한 나라의 죄는 한 개인의 죄 때문에 연쇄적으로 크게 번질 수 있다(16절). 개인의 악행이 공동체(사회) 전체에 영향을 준다(10-11절). 죄 없는 여로보암의 아들이 가문 전체에 내리고 있는 심판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눈 먼 예언자를 찾아 희망의 메시지를 얻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왕후의 변장은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관계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 2023. 10. 25. [문지웅 목사]여전히 유효한 ‘오직 말씀’의 길(왕상 13:1-10) 1. 수구의 길(르호보암) 두 왕은 토라(사활이 걸린 말씀)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갔다. 르호보암은 젊은 참모들에게 휘둘리며 민의(民意)를 무시할 만큼 오만하고 충동적이며 어리석기 짝이 없다. 시니어 참모들은 토라의 규례를 따라 백성의 공복(公僕, 공적인 심부름꾼)이 되어 과도한 징세나 강제노동 징발의 완화 조치를 건의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거부하고 '현상유지 정책'으로 정주행 하기로 했다. 르호보암은 '가학적 잔인성'(전갈 채찍)으로 강압적 지배를 택한다. 이에 백성들은 왕과 결별한다(12:16). 왕은 군사적인 힘으로 분열되고 있는 왕국을 회복하려고 애쓰지만 스마야 선지자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쟁을 멈춘다. 백성들의 반역은 압제적 정치체제 대한 단순한 불만을 넘어서 '독재자로 변질된.. 2023. 10. 23. 이전 1 2 3 4 5 6 7 ··· 12 다음